불광 n 북한산

푸른 기운의 수행자들, 청맥회

북한산인 2012. 5. 1. 11:04







불광의 사진첩

푸른 기운의 수행자들, 청맥회


 1965년 남해 보리암에서 모임을 결성했다. 법명만으로도 그 이름의 무게를 짐작하게 하는 송광사 보성 스님, 화엄사 도광 스님, 범어사 성수 스님, 해인사 일타 스님, 도견 스님, 화계사 숭산 스님, 통도사 홍법 스님, 석정 스님 등이 뜻을 모아 1965년부터 1970년대 초까지 함께한 모임, 청맥회(靑脈會)가 그것이다. 통합종단 출범 후 봉은사 주지와 종단 주요 소임을 병행하시던 광덕 스님 역시 청맥회 일원으로 함께하시며 간사로서 한 축을 담당하셨다.


우리 청맥은 청백가풍(淸白家風)이라. 즉사즉리(卽事卽理)하였으니 선(禪)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교(敎)도 율(律)도 그리고 온갖 사판(事判)을 망라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데서 무엇을 하던지 본분은 언제나 푸르게 살아있는 생명의 황금나무인 것이다.

-1969년 회의록


 회의록에 표방된 것처럼 청맥회는 승가사상이 투철한 중견스님들이 이해관계를 떠나 도반으로 결속한 모임이었다. 모임은 두 가지를 지침을 정해 실천에 옮겼다. 첫째는 1년에 한 번씩 회원이 사는 도량이나 특정한 곳에서 모임을 열고 지나간 일을 회고하고 앞으로의 일들을 논의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청맥지를 만들어 돌려보는 것이었는데, 하고 싶은 말과 소식을 편지로 적어 보내면 이를 인쇄해 스님들끼리 탁마하는 것이었다.


 청맥회의 출발은 참가한 스님들의 회고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얽어보면, 1963년 초 석정 스님과 일타 스님, 광덕 스님이 논의를 시작해 1965년 남해 보리암에서 3박 4일 모임을 가진 것이 그 시작이었다.

 서신을 보내 참석해주길 청한 분도 있었고, 어떤 경우는 소식을 듣고 왔으나 회원이 되지 못한 분도 계셨다. 초대회장을 맡은 성수 스님의 회고에 따르면 “광덕 스님이 회장을 맡지 않겠다고 해서 부득이하게 내가 됐다.”라고 말씀하신다. 모임의 최초 명칭은 청엽(靑葉)이라 정했으나 후일 청맥(靑脈)으로 변경했다. 광덕 스님은 초대 간사를 역임한 진상 스님이 1967년 입적하신 이후부터 간사를 맡으셨다.

 

 처음 10여 명으로 시작한 청맥회는 나중에 회원 수가 20명까지 늘었는데, 매년 한 차례씩 모며 용맹정진을 할 때면 수마(睡魔)가 얼씬거리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정기회의 자료를 살펴보면, 스님들은 모임 날 안건을 논의하거나 회원가입 여부를 논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재정에 대한 사항도 깨알같이 기록했으며 회원들의 동정도 세세히 기록해 자료집을 만들어 돌려 보았다. 「청맥(靑脈)」이라는 회지는 1971년 46호가 발행된 것으로 보아 거의 매달 발행된 듯하다. 

 한편 스님들은 사찰은 물론 인근 청산과 유적을 돌아보며 곳곳에서 사진 촬영을 했는데, 지금으로부터 40년전 스님들의 형형한 모습이 빛바랜 사진 속에 남아있다.


 70년대 초에 들면서 모임이 쉽지 않게 되었다. 스님들이 다들 종단 중책을 지닌 까닭에 시간을 잡기가 쉽지 않았던 듯하다. 1971년에는 조계종 임시종회에 맞추어 진관사에서 열리기도 했지만, 1971년 모임 이후에는 자료와 사진이 남아있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즈음 모임이 지속되기 어려워지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광덕 스님은 청맥회에 함께했던 스님들에 대한 글을 많이 남기시고, 서신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리고 먼저 입적한 분들을 위한 영결사와 추모의 글을 직접 찬하기도 했는데, 나중에 광덕 스님이 입적하실 때는 회원 스님들이 또 그 역할을 해주셨다.

 청맥회 모임은 어느 순간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청맥의 인연은 그렇게 이어져 왔다.


참고자료_『광덕 스님 전집』 1권, 『홍법선사 추모문집』


글 김남수_불광사 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