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 불광의 풍경
1990년대 초까지 제등행렬은 여의도에서 시작되어 종로에서 끝맺었다. 거리가 얼마나 멀었던지, 기억하기론 여의도에서 조계사까지 2시간 30분이 넘게 걸렸던 듯 하다. 그때는 지금처럼 화려한 장엄등도 없었고, 울긋불긋한 한지등도 없었다. 지금은 공단등(?)이라는 이름으로 괄시받는 규격화된 등이거나 한 잎 한 잎 정성스 레 붙인 연꽃등이 주류였다. 그나마 연꽃등이 보기에는 좋았지만 말 그대로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흩날리는 존재였다.
당시는 연꽃법회 어린이 불자들의 취타대와 ‘불광’이라고 새겨놓은 작은 장엄등이 불광의 가장 큰 자랑거리였다. 하지만 축제를 즐긴다는 마음가짐으로 나서기보다 불자로서 반드시 참가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 감으로 찾는 제등행렬이었기에 지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고 하겠다.
2007년부터 지금껏 계속되고 있는 석촌호수 제등행렬은 근래 불광사에서 진행하는 봉축행사 중 가장 멋진 프로그램일 듯하다. 예전에도 대로를 따라 제등행렬을 하긴 했지만, 밤 호숫가의 잔잔한 물결 위로 비치는 연등 불빛의 정취에는 비할 바 못 됐다. 이와 함께 불광사는 매년 서울놀이마당에서 봉축문화마당을 펼친다. 각종 공연과 퍼포먼스를 통해 불자와 비불자가 다함께 즐기는 부처님오신날을 만들고 있다. 올해는 동춘서커스가 무대를 휘어잡았다. 작년까지는 노래가 주가 되어 귀가 즐거웠다면, 올해는 눈이 즐거운 한해였다.
세월이 흘러 많은 것들이 변했다. 하지만 30년이 지나도록 변하지 않은 것이 두 가지 있다. 무명(無明)을 밝히듯 어두운 밤거리를 색색이 물들이는 찬란한 연등이 하나이고, 언제나 사람들을 환하게 맞이하며 앞장서 세상을 밝혀주는 초록색의 법복이 그 둘이다.
글 김남수_불광사 기획실장 사진 하지권